
브레드(Bread) 'If' — 말로는 다 그릴 수 없는 사랑에 대하여
어떤 노래는 처음 듣는 순간부터 이미 오래 알던 노래처럼 느껴집니다. 브레드의 'If'가 그렇죠. 부드러운 어쿠스틱 기타, 속삭이듯 낮게 내려앉은 목소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조용한 고백. 1971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반세기가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라디오와 결혼식장,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 한편에서 여전히 흘러나옵니다.
오늘은 소프트 록의 상징 같은 밴드 브레드와,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든 명곡 'If'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구워진 '빵'
브레드는 196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되었습니다. 중심에는 오클라호마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데이비드 게이츠가 있었고, 여기에 제임스 그리핀과 롭 로이어가 함께하며 밴드가 꾸려졌어요. 이후 드러머 마이크 보츠, 그리고 로이어가 떠난 자리를 채운 키보디스트 래리 넥텔이 합류하면서 우리가 기억하는 브레드의 모습이 완성됩니다.
데이비드 게이츠는 밴드 결성 전부터 이미 실력 있는 세션 뮤지션이자 편곡자, 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리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브레드의 음악에는 처음부터 군더더기 없는 단정함과 세련된 편곡 감각이 배어 있었죠.
밴드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소박합니다. 이름을 고민하던 중 앞에 지나가던 빵 배달 트럭을 보고 '브레드'로 정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누구나 일상에서 늘 곁에 두는 빵처럼 편안한 음악을 하겠다는 그들의 색깔과 묘하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에요.
'Make It with You', 그리고 정점으로
브레드의 첫 앨범은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1970년 두 번째 앨범 《On the Waters》에 실린 'Make It with You'가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르며 단숨에 정상급 밴드가 됩니다. 데이비드 게이츠의 섬세한 멜로디와 따뜻한 보컬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죠.
같은 시기 제임스 그리핀과 롭 로이어는 영화 〈러버스 앤드 아더 스트레인저스〉를 위해 공동 작사한 'For All We Know'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록 밴드 멤버가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은, 꽤 드문 경력이죠.
그리고 1971년, 세 번째 앨범 《Manna》에서 브레드를 대표하는 곡이 탄생합니다. 바로 'If'입니다.
'If'가 탄생한 순간
'If'는 데이비드 게이츠가 쓰고 직접 부른 곡입니다. 싱글로 발매된 이 노래는 빌보드 핫 100 4위까지 오르고, 이지 리스닝 차트에서는 정상을 차지했어요. 차트 순위만 보면 'Make It with You'가 더 높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브레드라는 이름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곡은 단연 'If'가 되었습니다.
곡의 구성은 놀라울 만큼 단순합니다. 나일론 기타의 잔잔한 아르페지오로 시작해 게이츠의 목소리가 조용히 얹히고, 후반으로 가며 현악이 은은하게 감싸 안을 뿐이에요. 화려한 기교나 극적인 고음 없이도 이토록 깊은 여운을 남긴다는 것, 그게 바로 'If'의 힘입니다.
가사가 건네는 고백
'If'의 노랫말은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이어지는 사랑 고백입니다.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림으로 옮기고 싶지만, 아무리 훌륭한 그림이라도 그 사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말해요. 말과 그림, 그 어떤 표현 수단으로도 다 그려 낼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거죠.
노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설령 세상이 끝나는 날이 온다 해도, 마지막 순간을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지거든요. 누군가에게는 과장처럼 들릴 수 있는 맹세지만, 게이츠의 담담한 목소리로 들으면 그저 진심 어린 속삭임처럼 다가옵니다. 이 노래가 오랫동안 결혼식 축가와 프러포즈 곡으로 사랑받아 온 이유이기도 하죠.
다시 불린 'If'
명곡은 늘 다른 목소리를 통해 새 생명을 얻습니다. 'If'도 마찬가지였어요.
가장 의외의 버전은 배우 텔리 사발라스의 것입니다. 드라마 〈코작〉의 민머리 형사로 유명했던 그는 1975년 이 곡을 노래라기보다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내레이션 형식으로 발표했는데, 이 버전이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가수들이 'If'를 리메이크했고, 지금도 재즈, 보사노바, 어쿠스틱 등 다양한 스타일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어요. 그만큼 멜로디와 가사가 탄탄하다는 뜻이겠죠.
한국에서 사랑받은 브레드
브레드는 유독 한국에서 오래, 그리고 깊이 사랑받은 밴드입니다. 'If'를 비롯해 'Everything I Own', 'Diary' 같은 곡들은 7080 세대에게 라디오 팝 프로그램의 단골 신청곡이었고, 음악다방과 카세트테이프 시절의 추억과도 맞닿아 있어요.
영어를 몰라도 귀에 쏙 들어오는 부드러운 멜로디, 차분하고 서정적인 정서가 한국인의 감성과 잘 맞았던 덕분일 겁니다. 지금도 '추억의 팝송', '잔잔한 올드팝' 같은 플레이리스트에서 브레드의 이름을 빼놓기란 쉽지 않죠.
그 후의 브레드
브레드는 1973년 멤버 간의 갈등, 특히 곡 선정과 싱글 발매를 둘러싼 게이츠와 그리핀 사이의 견해 차이로 활동을 멈춥니다. 하지만 1976년 다시 모여 앨범 《Lost Without Your Love》를 발표했고, 동명의 타이틀곡이 다시 한 번 큰 사랑을 받았어요.
이후 밴드는 다시 흩어졌고,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2005년에는 제임스 그리핀과 마이크 보츠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며 많은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죠. 그래도 그들이 남긴 노래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습니다.
'If'와 함께 들으면 좋은 브레드의 노래
'If'가 마음에 들었다면, 브레드의 다른 곡들도 꼭 들어 보세요.
'Make It with You'는 브레드에게 첫 1위를 안겨 준 곡으로, 'If'보다 조금 더 경쾌하면서도 다정한 사랑 노래입니다. 'Everything I Own'은 데이비드 게이츠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며 쓴 곡으로 알려져 있는데, 훗날 켄 부스의 레게 버전과 보이 조지의 버전이 각각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며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받았어요.
'Diary'는 일기장을 통해 연인의 마음을 알게 되는 쓸쓸한 이야기를 담은 곡이고, 'Aubrey'는 한 번도 가까워지지 못한 사랑을 회상하는 아름다운 발라드입니다. 조금 더 밝은 분위기를 원한다면 'Baby I'm-a Want You'와 재결합 후의 'Lost Without Your Love'도 추천합니다.
마치며
'If'는 크게 소리 내지 않는 노래입니다. 사랑을 외치기보다 조용히 털어놓고,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담백하게 건네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이 있는 날, 브레드의 'If'를 한 번 틀어 보세요. 반세기 전의 고백이 오늘의 내 마음을 대신 이야기해 줄지도 모릅니다.